한 줄 평
일류주의, 인재주의, 시의적절하게 국가와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했다.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있나..
인상 깊었던 부분
보통학교, 중동학교, 대학교 학업을 제대로 마친적이 없어서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진취적으로 학교를 바꾸어 다녔다. 서당에서 지수보통학교로, 지수보통학교에서 서울의 보통학교로, 중동학교로, 와세다 대학교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자극을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판단된다.]
와세다 대학교 중퇴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개량종 돼지와 고급 채소를 가져와 재배하려고 시도했지만 취미에 그치고 말았다.
서울에서 2년 간 놀았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서 노름에 빠져지냈다. 26세가 다 되어서까지 신나게 놀던 어느날 미래에 대한 고민에 잠못이루는 날을 보냈다. 벌써 자녀가 셋이나 되었다. 막연하게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가했다고 한다.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최초로 공장을 설립한 회사라고 하니 그 의미가 달라보였다.
[어제 탕수육 소스 사러 마트에 갔다가 씨제이 것을 사려고 했다.]
국내 기술자들만을 가지고 설비 설치를 완료하여 일본의 기술자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실력을 증명하고자 스스로 하려고 했다.
제일모직을 설립하였다. 공장에는 조경과 기숙사등 직원이 이용하는 시설에 투자를 많이 하여 직원복지에 신경을 썼고, 능률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동네에서 제일모직이 제일공원이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한국비료를 설립했다. 56년도에 국내 최대규모의 공장을 계획했다. 독일과 이태리에서 차관을 받아서 진행했다. 4~5천만달러 규모의 엄청난 사업이었다.
당시 삼성은 4대 은행의 지분을 50퍼센트 이상 갖게 되었다.
한국타이어, 삼화시멘트 등 대주주가 되었다.
[국제정세와 국내 환경을 고려한 투자, 사업에 대한 식견이 정말 대단하시다. 어떻게 배운건지...? 동물적 감각인가?
일본에서의 공부와 해외에서 견문을 넓히는 일에 힘을 기울여서 그런가보다.]
인재등용과 인사에 뛰어났다.
서울에서 사업을하다 피란으로 빈털털이가 되어 대구로 내려왔다.
잊고 지냈던 대구의 양조장에서 3억원의 잉여금을 축적해두어서 그 돈으로 다시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양조장 직원들의 정직함에 큰 감동을 받았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을 갖을 때까지 검토하고, 결정하면 철저하게 밀고 나아갔다. 제일제당, 제일모직, 한국비료들이 모두 그런 일이었다.
산업을 일으키는 것은 외국에 외화유출을 줄이고, 저렴한 공산품의 제공으로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고, 일자리 창출로 사람을 고용하여 경제에 참여 시켜 새로운 소비자로 만들어주어 선순환을 만든다.
최빈국인 대한민국에서 만드는 물건에 대해 국산품=저품질의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벼렸다. 제일모직에서 생산된 제품은 모직의 본고장 영국까지 수출되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세계최고 품질을 목표로 했다.. ㄷ ㄷ 어떤 공부를 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우리나라니까 이정도 수준이라도 어쩔수 없다', '이 정도라도 잘한거야' 라고 생각을 했던 내가 많이 부끄럽다]
최고의 도덕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봉사라고 대답하고 싶다. 인간에게는 이처럼 실천하기 어렵고 엄숙한 과제도 없다.
연구하고 개척했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참으로 전인미답의 처녀지였다.
하나하나 자문자답하면서 혼자서 그 해결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사필귀정
거짓과 꾸밈은 개인에게나 국가.사회에도 대환이라는 것
특히 신을 강조하고 "비록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
노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다. 그러나 노할 줄 알면서 능히 참는 자는 현명하다고 한다.
'나라는 강해야 한다. 강해지려면 우선 풍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풍족하고 강한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한다.'
나의 인생을 사업에 걸어보자. 그냥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얼마만큼 정표를 하자 오랜 은행원 생활에서 이렇게 기쁘기는 처음이라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
손해난 원인을 분석한 결과 군중심리에 따라 쌀값이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전술을 180도 전환하여 시세가 자꾸 올라갈 때는 팔고 반대로 내려갈 때는 샀다. 이 작전이 대체로 적중을 하였다.
[손해가 난 원인을 분석하는 자세, 군중심리 오류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었다. 전략가의 면모이다. 현상을 꿰뚫는다.]
사업을 운영할 때에는 첫째 국내외 정세의 변동을 적확하게 통찰해야 하며, 둘째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 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고, 셋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 2, 제 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함으로써,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고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청산하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지피지기, 대비책 마련, 욕심 버리기, 이순신의 자세]
마산의 곡물거래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 청과물의 작황이나 어황도 끊임없이 조사했다.
판매에 제조를 겸하기로 했다.
[공부하는 자세... 진짜 존경스럽다.]
"의인 물용, 용인물의"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 말라.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그리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민생과 경제와 정치는 삼위일체의 것이어서 서로 적절하게 보완 결합되어야 국가. 사회의 발전이 비로소 약속되는 것이다.
이발소 3대째 가업으로 하는 투철한 직업의식에 놀랐다.
익자삼우요, 손자삼우라 했다.
정직한 자를 벗으로 하고 미더운 자를 벗으로 하고 견문 많은 자를 벗으로 함은 익이요, 아첨하는 자를 벗으로 하고 성실치 못한 자를 벗으로 하고 말만 앞세우고 실이 없는 자를 벗으로 함은 손이라 했다. 또는 순경은 벗을 만들고, 역경은 벗을 시험한다는 말도 있다.
[정직한 자, 미더운 자, 견문 많은 자]
결산상의 수치는 전시 인플레에 의한 명목상의 팽창임을 생각할 때 고수익의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인플레의 무서움을 알게 했다.
[인플레의 무서움 깨달음]
제조업에 대한 여러 가지 조사결과, 제지, 항생물질 등 제약, 설탕의 국내 생산능력은 거의 전무한 상태여서, 국민생활이나 산업활동에 긴요한 중요 물자이면서도 수입에만 의존하는 실정임을 알았다. 이러한 품목의 수입대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국산화-기술-일자리의 건전한 마인드, 진짜 애국 빌드업]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 "무슨 일에나 제일의 기개로 임하자. 제일제당은 해방 후 우리나라에 건설된 최초의 현대적 대규모 생산시설이다. 앞으로 항상 한국경제의 제일주자로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크게 기여해 나가자."
[정말 감동스러웠다. 마인드가 진짜 훌륭하다. 나는 CJ만 사먹어야겠다.]
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는 기계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며칠 밤낮을 보냈다.
[사장의 참 모습]
외국산과 같은 품질의 것을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싼값으로 제공하여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면서도, 초기의 회사이익은 매우 컸으며 수입대체효과도 컸다.
제일제당의 성공은 삼성이 근대적 생산자로서의 면모를 갖춘 첫걸음이었던 동시에, 상업자본을 탈피하여 산업자본으로 전환한 한국 최초의 선구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를 이끈 시초]
한 나라의 산업발전에는 역사에서 보듯이 단계적으로 굳혀가는 발전의 과정이 있다. 초기에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자급자족하는 소비재산업. 경공업을 육성함으로써 기술(인적 능력)과 경험과 자본을 축적하고, 그 기반 위에 고도의 기술과 거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중화학공업이나 전자 등 고도기술 산업으로 점차 이행해 가야 한다.
[시대별 상활별 전략이 존재한다. 맥락에 맞는 전략이라고 한다.]
양질의 상품이나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면서, 동시에 고용과 소득의 기회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막중한 사회적 책임이며, 기업을 통하여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대도라고 확신했다.
신생조국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었다.
기업가는 기업을 구상하여 그것을 실현시키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면서, 국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발전적으로 파악하여, 하나하나 새로운 기업을 단계적으로 일으켜 갈 때, 더 없는 창조의 기쁜을 가지는 것 같다.
어떤 사업이건 실패의 위험은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의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안고 착수하는 것이다. 100%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제당공장을 지을 때에는 일본인들이 같은 말을 했지만 건설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제조기술만 도입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우리 손으로 건설해서 당신들을 놀라게 해 줄 결심"이라고 말하였다.
책상 서랍에서 상세한 메모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 메모에는 모직공장건설에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온도.습도 등 기상조건에서부터, 전력.노동력.교통.용수.수질은 물론 종업원에 대한 기술지도.훈련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48개 항목에 걸친 문제점과 대응책이 하나 하나 적혀 있었던 것이다.
제당공장을 자력으로 건설한 경험도 있고 국내기술만으로 이런 정도의 기계의 조립과 설치는 모두 가능하므로, 독일 기술자는 핵심부문의 몇 사람이면 족하다고 했다.
[서양놈들이 어디에서 돈을 빼먹는지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원가절감 마인드, 국내 기술로 승부를 본다- 배수의 진 전략,]
우리나라에는 유능한 기술자가 많으므로 제사.염색.가공.공조 분야에 4명만 파견해 주면 충분하다. 그 밖의 것은 그때 가서 상의하자
기술자를 비롯한 건설요원들에게는 우리가 왜 모직공장을 지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우리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 공장이 혹시라도 잘못된 데가 있을 경우에는, 우리나라 기술자의 체면은 땅에 떨어진다고 독려했다.
각 부문의 기술책임자에게는 기술문제는 전폭적으로 일임한다고 당부하면서, 모직공장에 거는 나의 꿈과 이상을 털어 놓았다.
[진짜 멋있다. 리더]
기숙사에는 최상급의 쾌적한 시설을 갖추도록 하자. 이렇게 굳게 마음먹고 전관에 스팀난방을 설치했다. 공장 내의 스팀난방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일모직의 일관생산공장 = 공익성과 합리성, 기술의 우위성, 국제적인 경쟁력, 종업원의 복리시설 등 기업에 담은 나의 꿈
모든 일에는 면밀한 계획과 그 계획의 수행을 뒷받침하는 준비가 불가결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얼마 안 가서 외국인 기술자들 입에서 이제 더 이상 지도할 것이 없다는 말이 나왔지만, 고급기술자를 계속 초빙하여 자문을 받도록 했다.
제일모직의 제품은 본고장인 영국에까지 역상륙하여 인기를 끌게 되었다.
[세계 일류, 최고 수준을 향한 집념]
조경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활동의 일부인 것이다.
자본을 축적하여 차례차례 새로운 기업을 개척함으로써, 선진 외국과 당당히 맞서서 이긴다. 그것이 내가 나아갈 길이다.
나의 성공이 우리나라 기업가들에게 적어도 생산공장건설 의욕을 불러일으켜, 오늘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산업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시중은행주를 매수한 것은 이 나라 금융의 근대화를 기필코 실현하자는 일념에서였다.
"인사를 포함하여 일상적인 은행 운영은, 전적으로 행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에 맡긴다."
"경영진이든 행원이든 관료의식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경영을 능률적으로 할 것, 서비스를 개선하여 시민의 금고로서 널리 친근감을 주는 은행이 되게 할 것, 그리고 재원, 즉 예금을 많이 유치해서 산업발전을 위한 금융기능을 뒷받침할 것"을 강조했다.
은행주 외에도 몇몇 기업의 주식을 샀다. 한국경제의 장래를 위해서는 모두 빼놓을 수 없는 업종이지만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더욱 크고, 국민경제로 봐서 더 한층 유익한 것을.."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비료 공급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연간 원조자금 2억 5천 달러 중 1억 달러 내외를 비료 도입에 쓰는 실정이었다.
[국내외 정세와 환경 파악]
서독 경제가 그처럼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 통제경제를 완전한 자유경제 체제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의 반성
우리의 생활주변에는 빈곤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는 경향이 너무나 짙다는 점이다. 빈곤을 청렴과 혼동하고, 오히려 이를 자랑하는 사조
[예전이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똑같다.. 빈곤은 미덕이 아니다. 공자와 예수가 가난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짜 가난함이 의와 덕을 잃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지금 1770년대의 영국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약 200년 전의 코스를 하나하나 밟아 내려올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우선 착수해야 할 일은, 외화를 많이 사용하는 품목, 국민 대중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품목, 그 원료를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품목 등의 생산공장을 단시일내에 건설하는 것이다.
나는 기어이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대의 것, 36만 톤을,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사내 대장부의 포부]
치솟는 화를 참을 길이 없어 정색을 하고, "도대체 고객에 대한 그 태도가 뭔가.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미쓰이와의 거래를 안 해도 좋으니 당장 나가라"고 일갈했다.
자금을 빌리는 처지일망정 나는 고객이다. 한국의 기업이라고 하여, 혹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여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상담을 진행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상남자 바이브]
"제가 복요릿집을 하는 것은, 돈을 벌자는 것 외에 최고의 맛을 손님들에게 서비스하자는 데 있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제 맛이 안 나는 것이 억울합니다. 네 분이 보통 손님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직업에 이토록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평생을 외곬으로 파고드는 직업의식, 그것은 감동적이기도 하였다.
[감동을 하였다니 감동이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인도 파키스탄 중 그 어느 쪽이 소중하냐?"고 물었다. 우시바 씨는 일순 어리둥절해하더니 "물론, 한국"이라고 대답했다. 여유를 주지 않고 인도나 파키스탄에 대한 일본의 상업차관 공여액을 물었다. 비료공장건설을 계획하면서 일본의 각국에 대한 차관공여 상황을 조사해 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우시바 씨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것은 잘 알지 못하므로, 그 내용을 조사후 나의 제언을 검토해 보자로 수긍하는 자세가 되었다.
공장의 부문별 시설을 점검하다가 머리에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일러나 파이프의 용량과 배치는 모두 당초 계획대로 하더라도, 암모니아와 요소의 주요 부문 시설을 약간만 늘리면, 생산능력을 3만 톤 정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플랜트와 설비 그리고 비료에 관한 지식이 머릿속에 담겨져 있다...]
여기에 새로 세우려는 이 공장은, 특정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전농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전체가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내일의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이 나라의 것이요, 우리 국민의 것임을 이해하고 인식하여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는 바이다.
김재명 군은 노무자들과 침식을 같이하면서 불철주야 공사를 독려하여 공장을 단시일에 완공시켰다. 공장이 완성될 때까지는 귀가하지도 않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의복을 갈아입을 정도였다.
김재명 군은 매일처럼 누구보다도 먼저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합숙 중인 다른 사람들이 깰까봐 소리를 죽여 가며 몰래 일어나서 건설 현장으로 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김 군의 솔선수범과 지성이 종업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일사불란한 단합을 이루게 했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먼저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자. 일을 더 하라고 강요하거나 피해를 주지는 말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자.]
'사필귀정'의 뜻을 되새기면서,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역경속에서도 용하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리는 마음을 가누어 시종 정심정념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기위안을 했던 것이다.
애국심, 공과 사의 구별, 봉사정신, 어버이나 형제 그리고 남을 헤어리는 성실한 마음가짐... 이것들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제도나 법률을 초월한 인간사회의 기본규범, 즉 도의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 주듯, 도의가 땅에 떨어지고 망하지 않은 국가는 없다.
인간이 추구하는 지선의 가치가 마치 생활 외형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 '효'는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어버이를 효경하는 자식의 마음에는 고금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효'가 바탕이 된 가장은 건전하다.
나는 그 때 문화재단의 사업으로,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성웅 충무공의 사당을 시멘트조가 아닌 한국 고유의 전통미를 갖춘 장엄한 목조건축으로 할 것을 원했다.
삼서전자 사업을 일으키면서 나는 '모래에서 브라운관까지'라는 모토로 생산품의 시작과 끝을 잇는 전공정주의를 채택해 왔었다. 전주제지도 이를테면 신문용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구상에서 전공정주의로 시작된 것이다. 펄프 공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신문용지의 안정적인 공급이야말로 신문사업 창달을 위한 기초적인 급선무였다.
농원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온갖 정성이 깃들어 있다. 이 푸르르고 풍성한 농원의 자연은 후세의 유산으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래 후손을 위한 사랑을 남기셨다.]
기업은 자선후생의 단체가 아니다.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적자를 내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악이라 할 것이다. 자본.자재.사람 등 사회의 귀중한 자원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기업부실화의 부담은 결국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생산하는 재화가 소비재냐 생산재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불가결하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이다. 양질의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게 사회에 공급하느냐, 바로 이것이 기업의 사명의 전부이고 그 존재가치이기도 하다.
사업성을 검토해 본 결과, 전자산업이야말로 기술.노동력.부가가치.내수와 수출전망 등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의 경제단계에 꼭 알맞은 산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우선 민수용 전자공업 분야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업의 기반을 굳힌 다음, 반도체.컴퓨터 등의 산업용 분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유럽의 유수한 전자업체들과 기술제휴 또는 합작
조선은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유럽의 절반 정도라는 일본의 저렴한 임금이 강점이었다. 이것은 한국의 조선공업의 밝은 내일을 암시해 주었다.
조선소를 만드는 이상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이 높은 것을 만들고 싶었다.
그대로 안정리조선소 건설을 강행했더라면,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 틀림없다. 사업에는 착수하는 용기와 함께 물러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섬유의 70% 이상이 화학섬유인데 그 원료가 없어 전략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중요 수출품의 원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절대로 필요하다.
물심양면의 대비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우위의 국방력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항공기 산업은 1977년 8월 삼성정밀 공장의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방대하고 복잡한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합리적으로 치밀한 관리방식, 사원들의 높은 사기로 뒷받침된 조직의 활력 등, 근대적 기업이 필요로 하는 허다한 조건들을 삼성이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귀빈을 안심하고 접대하고 대규모 국제회의도 개최할 수 있는 세계 초일류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교가 있던 대성건설의 남 회장 알선으로 호텔 오오쿠라의 노다 회장을 만나 제휴를 제의했다. 호텔 경영은 노하우의 집적체나 다름이 없어, 집기 하나, 음식 나라는 법 하나에도 노하우가 있다. 호텔의 노하우는 모두 1,400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을 완벽하게 갖춘 호텔 오오쿠라에서 배우고 이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기술 제휴가 정말 빠른길이다. 우리 업장에도 도입이 시급하다]
모든 것을 전권위임 하는 경영체제를 일관하여 채택했다.
비서실을 두어, 그룹 전체의 통광을 비서실에 일임해왔다.
각사 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분담시키고, 비서실이 그룹의 중추로서 기획.조정을 하는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나는 경영, 운영의 원칙과 인사의 대본만을 맡아왔다. 삼성이라는 기업그룹의 창업이념, 그에 근거한 기업경영의 원칙, 이것을 이어갈 인재의 발굴, 이것만을 맡아왔다.
경영진단을 정례적으로 실시하여, 경영.조직의 합리화를 계속 추진시켜왔다. 한편 장.단기 경영계획 제도를 도입하여, 각 기업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하고 매월 계획대비 실적을 평가함으로써, 기업체마다 목표달성을 위해서 유효적절한 대응,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해왔다.
사업부제, TQC 운동, 품질 개선 운동 = 제일모직 ZD 운동
공개채용 사원모집, 인사고과제, 어학검정고시제
공채를 통해서 일류학교의 수재를 모아들일 수 있었고, 그 결과 오늘의 삼성이 있게 되었다.
인재제일은 나의 신조이며, 인사정책은 언제나 삼성의 경영정책 중에서 최우선의 위치를 차지한다.
국가번영과 민족융성의 터전을 닦아 보려는 일관된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981년 취임사에서 "기업가들이야말로 새로운 일자리와 부와 기회를 창조해내는 이 시대의 영웅들"이라고 기업가들의 역할을 찬양한 바 있다.
신라시대의 장보고 같은 위대한 조재. 그는 1천년 전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여 중국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멀리 동지나해 깊숙이까지 그 세력을 뻗치면서 상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일대를 누비는 절대적인 힘의 무역상이자 호상이었다.
여기에서 긴요한 것은 왕성한 도전정신과 끊임없는 노력정신에 의해 모든 분야에서 계속 선구적으로 신기축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1982년, 21년 만의 미국 방문에서 우리는 지금 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샌프란시스코 변두리에 나갔더니, 8차선 도로에는 출근하는 승용차가 줄을 잇고 있었다. 거의 모두 대형차였고 그것도 혼자만 타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와 같은 큰 낭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없고 무역입국의 길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산업의 재편성을 서둘러 추진하고, 첨단 기술 산업을 시급히 개발.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사정이 다르고, 갑자기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한국의 살길은 첨단기술 산업의 시급한 개발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귀국했던 것이다.
언제나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는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등이 그것이다.
삼성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적 타산이나 위험을 초월하여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기술에 도전한 삼성의 확고한 기업정신
둘째, 바이폴라 IC가 주제품이었지만, 부천 IC공장의 10여 년간의 경험과 인력의 축적이 있었다.
셋째, 삼성이 VLSI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자 세계경제가 호황으로 전환하여 반도체 산업에 활기가 되살아났다.
넷째, 최신 최고 이면서 최염가의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다섯째, 재미 한국인 박사의 사심없는 조국애에서 비롯된 적극적인 참여로 고도의 두뇌집단과 기술인력을 확보 할 수 있었다.
여섯째, 여자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근면한 노동력의 확보, 훈련이 가능했다.
일곱째, 어려운 입지조건에 적합한 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여덟째, 긴축정책 속에서도 각 금융기관의 각별한 이해화 협력을 얻어 쇼요자금을 순조롭게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 한다. 일렉트로닉스 혁명의 물결에서 우리가 뒤지기 시작하면 영원히 후진국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의 자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평소 어떠한 사람이 사장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온 몇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덕망을 갖춘 훌륭한 인격자이어야 하고
둘째, 탁월한 지도력을 구비하고
셋째, 신망을 받는 인물이어야 하며
넷째, 창조성이 풍부해야 하고
다섯째, 분명한 판단력을 갖추고
여섯째, 추진력이 있어야 하고
끝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직력으로 다양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되어 서로 보완적으로 협력하면 능히 그런 경영체를 만들 수 있다.
아직도 삼성이 소비재 생산에서 출발한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지만, 자본의 축적상황, 기술의 수준, 내외시장의 동향 등 여건에 상응하여 추진해야 산업은 발전하는 것이다.
[맥락에 맞춰라]
장기적이로 본격적인 안목에서 시대의 요구를 파악하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하고 정직하게 사업하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모두 서로 덕을 보는 공존공영의 원칙을 엄수함으로써 기업은 발전한다. 기업은 결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변화에의 도전을 게을리 하면 기업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쇠퇴하기 시작하면 재건하는 것은 지난하다.
고생스러운 기업경영의 일을 자손들한테까지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업 탓으로 숱한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업경영의 80%를 인재양성에 쏟아왔고, 인력에 대해서만은 아낌없는 투자를 해오고 있다.
잘못한 사람을 제재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신상필벌 제도가 없다면 회사나 국가는 발전할 수 없다. 이 같은 신상필버이 바로 인사관리의 요체이다.
공장장 이하 열댓 명의 직원이 상당한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 사장은 관용을 간청했다. 그 사장의 뜻대로 처리하도록 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난 뒤 2백여 명의 직원이 관련되어 온 세상에 알려질 정도로 부정은 확대되고 있었다.
나는 안양골프장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건설에 앞서 일본의 유명 골프장을 다 돌아보고, 구미의 저명 골프장에 관한 문헌을 두루 찾아 그 장점을 따서 가장 이상적인 설계를 했다. 일본의 명문, 스리헌드레드 클럽의 시자장이고 일본 상공회의소회두인 고토 노보루 씨에게 의뢰하여, 그의 산하업체 임원인 가네자와 씨에게 설계하도록 했다.
가장 감명을 받은 책 혹은 좌우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경영의 기술보다는 그 저류에 흐르는 기본적인 생각, 인간의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삼성항공산업 설립을 마지막으로 별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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